[아침을 여는 음악]3월 5일(수) - 깨어나 다가오는 봄
▲깨어나 다가오는 봄
◾오늘 경칩(驚蟄)
◀춘설(春雪:봄눈)
✱황병기 가야금 협주곡
◼가야금:배유정, 장구:이창원
◀봄이 오는 길
✱TV 조선 대학가요제
◼최여원(서울예대)
◀봄이 오는 소리
◼안형렬(테너)
◀강 건너 봄이 오듯
◼임선혜(소프라노)
◉경칩(驚蟄)은 숨어서
잠자던 벌레들이
놀라서 깨어나는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통상 이 무렵에는 날씨가
오락가락했던 모양입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그 소리에 잠자던 벌레들이
놀라서 잠에서 깨어나
나온다는 의미에서
놀랄 ‘경’(驚) 자를
쓴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춥고 따스한 기운이
번갈아 오가다가
마침내 기온이 오르면서
봄으로 다가선다는
출발점이 바로 경칩입니다.
◉올해 날씨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경칩을 앞두고 지난 주말부터
봄을 부르는 3월이 시작됐습니다.
3월 시작과 함께
봄비와 봄눈이 번갈아 오갔습니다.
어제도 거의 종일
봄눈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봄이 시작된다는
3월의 입구를 온통 하얗게
덮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면서
눈 녹은 물이 처마 끝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사이사이 매서운 꽃샘바람도
다녀갑니다.
‘3월은 사자처럼 다가와서
양처럼 지나간다’는
서양 속담이 떠오르는
경칩 즈음의 날씨입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을 맞이하는 때에
내리는 눈에서 사람들은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봄눈은 서설(瑞雪)같이
다가옵니다.
동시에 물러나고 있는
겨울에 대한 허전함도 담깁니다.
그래서 이즈음에 내리는 봄눈은
‘향수’로 잘 알려진
시인 정지용의 ‘춘설’(春雪)을
불러오게 만듭니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봄눈이 내리면서 봄을 맞는
반가움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는 겨울에 대한
아쉬움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떠나가는 추위에 대한
아쉬움과 허전함도 서려 있습니다.
◉한두 번의 봄눈이 더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봄눈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나면 귀하고 반갑습니다.
겨울 끝, 봄의 시작에 맞춰
시골 마을에 평화스럽게,
신비롭게 내리는 봄눈을
단아한 가야금 가락에 담아봅니다.
그 속에서 조용히 찾아오는
봄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가야금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황병기 선생이 남겨놓은
1997년의 ‘가야금 협주곡’입니다.
◉5악장, 15분 전후의 길이로
구성된 이 곡은 봄눈 내리는
마을 풍경을 동심으로 담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6분 남짓으로 줄여 편곡한 곡을
배유경 가야금 연주자의
연주로 만나 봅니다.
대한민국 전통 예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국악계의 재원입니다.
2악장에서 평화롭게 내리던 눈은
3악장으로 들어서면서
신비로워지고 5장으로 가면서
신명 나게 내려 쌓입니다.
장구 반주는 국악인
이창원이 맡았습니다.
손끝에서 다양한 가락으로 내리는
봄눈으로 봄의 소리를 듣고
봄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https://youtu.be/L5qxFDXAteE?si=reR8IsxRq_Pn6LJN
◉경칩은 부활(復活)의 날입니다.
여러 생명이 겨울잠에서
깨어납니다.
초목도 새 생명을 잉태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그리 부를 만합니다.
예로부터 이날은 희망의
봄을 여는 축일(祝日)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이날에는
가벼운 죄를 지은 죄수를 방면하고
고아나 자식 없는 노인을
보살펴 주었다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광복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있을 만한
일입니다.
동시에 이날에 중요한
금령(禁令)도 내려졌습니다.
‘절대 불을 놓지 말라!’,
바로 절대 해서는 안 될
나라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때니 지금이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이때는 심한 건조기입니다.
아직 겨울눈을 열지도 않은
나무들은 바싹 말라 있습니다.
마른 낙엽이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여기에 봄바람까지
만만치 않습니다.
불이 나면 대형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시기입니다.
◉최근 미국 LA에서 발생한
산불은 재앙 수준의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만 8천여 채의 건물이 불타고
29명이 숨진 이 최악의 산불로
237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틀 전 열린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모금 운동을 펼치며
조촐하고 검소하게 치러진 것도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
이 LA 산불 때문이었습니다.
◉3년 전 대형산불로
큰 피해를 봤던
울진 삼척을 포함한 영동 지역은
올해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이라고 합니다.
산불이 나면 또 한 번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특히 나무가 마른 장작 수준으로
말라 있어서 불이 나면
진화 작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산불은 사람에게는 물론
봄을 준비하는 초목에게도,
힘들게 겨울을 보낸
야생동물에게도,
막 잠에서 깬 벌레에게도
희망의 봄이 아닌 암울한 봄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합니다.
초봄에 산불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경칩이 지나면서
봄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고 느껴집니다.
봄은 여러 곳으로 옵니다.
논밭으로도 오고
숲으로도 오고
눈과 얼음 녹아 흐르는
물을 통해서도 옵니다.
포크송 ‘봄이 오는 길’은
봄이 등장하는 초봄이면
한 번쯤 듣게 되는
정겨운 추억의 노래입니다.
◉일흔아홉 살의 박인희가
51년 전에 부른 노래입니다.
서정적인 아름다운 노랫말과
정겨운 멜로디로 봄을 대표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특히 박인희 특유의 청아하고
순순한 목소리를 생각나게
만드는 노래입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열아홉 살 대학 새내기의
청량하고 상큼한 목소리로
‘봄이 오는 길’을 찾아가 봅니다.
◉몇 달 전 ‘대학가요제’에
출연해 부르는 서울예대 1학년
최여원의 ‘봄이 오는 길’입니다.
심사위원 여덟 명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은 무대입니다.
특히 작사가 김이나는 가장 찾던
목소리를 만났다며 반겼습니다.
제주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해
검정고시로 서울예대에 입학한
새내기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최종 3위로 입상한 최여원의
이 노래 조회수는 모두
3백만을 넘어 가장 인기 있는
무대가 됐습니다.
제주 소녀가 안내하는
‘봄이 오는 길’입니다.
https://youtu.be/5IxHHIgS5kg?si=nyiamqWKOEjkkAry
◉북한강을 덮고 있던
얼음이 녹아 이제는 가장자리만
얼음이 조금 남았습니다.
이제 뱃길이 열려
짐 실은 배도 충분히
다닐 수 있습니다.
얼음이 거의 녹은 동네 흑천의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경쾌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청둥오리는 물 위에서,
봄의 기운에 젖어
기분 좋게 움직입니다.
◉남한강이 여주를 지나는 구간은
여강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이 여강의 물길도 모두 풀렸습니다.
여주에서 나서 여주여고를 나온
주부 시인 송길자의 사설시조
‘강 건너 봄이 오듯’은
살아온 고장의 이 여강에
찾아온 봄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강마을에 스며드는 봄과
마음속에 찾아오는 봄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냈습니다.
얼음 풀린 안개 자욱한 강과
그 위를 오가는 나룻배,
새소리, 바람 소리에
강 건너 마을의 밥 짓는 연기까지
봄기운 속에 풀어놓았습니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등단한
송길자는 작곡가 임긍수와
머리를 맞대고 후렴구까지 만들어
1990년에 이 노래를 완성했습니다.
새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풍부한 감성으로 그려낸
이 노래가 국민 가곡으로
자리 잡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광고에도 등장하고 봄이 오면
여러 성악가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모두에게 익숙한
봄을 부르는 가곡이 됐습니다.
3년 전 예술의 전당서 열린
가곡 무대에서 이 노래를
가져옵니다.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춘 소프라노 임선혜의
무대입니다.
https://youtu.be/tzFBK9oDyPk
◉소리로도 맞이하는 봄입니다.
봄의 소리 역시
여러 가지로 다가옵니다.
새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눈 녹아내리는 소리,
벌레들이 움직이는 소리 등
다양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봄의 소리는
가슴에서 피어나는
봄을 향한 소리입니다.
‘내 작은 가슴에
살며시 피어나는 봄의 소리’
시인 이상목의 시에
서정 가곡 작곡가 황덕식이
곡을 붙인 가곡
‘봄이 오는 소리’입니다.
◉건축사 출신의 이상목 시인은
캐나다에서 산 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고국에서 봄의 소리를 들은 지가
오래됐지만 작곡가 황덕식과 함께
만든 ‘봄이 오는 소리’를
한국에 남겨놓고 갔습니다.
하동 출신의 황덕식 작곡가는
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뒤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상목 시인은 지금쯤이면
봄의 소리를 듣기 위해
캐나다 록키를 다녀온다고 합니다.
베르디 국립음대에서 공부한
테너 안형렬이 들려주는
‘봄이 오는 소리’입니다.
https://youtu.be/wT7y1t7Vq5k?si=BhQGwC6GMtFCw4c5
◉미니 비닐하우스에서
다섯 번째 겨울을 보낸
녹차 나무도 흩날리는 눈 속에서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녹차 나무는 냉해에
아주 약합니다.
영하 7도 이하의 추위가
며칠만 이어져도
견뎌 내지 못합니다.
이제 경칩이 지났으니
비닐하우스를 벗고
봄기운을 머금어도
될 때가 됐습니다.
◉지난가을 유난히도
꽃이 많이 피고
열매도 견실하게 달렸던
녹차 나무 20여 그루가
이제 여섯 번째 봄을 맞게 됩니다.
남쪽 보성에서 올라와
북쪽 양평 산골에 귀하게
자리 잡은 여섯 살배기입니다.
올봄에는 그 파릇한 잎에서
깨어나는 봄을 맛과 향기를
만나 보려 합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