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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음악 10월 21일(월)✱

 

▲가을의 은발 신사

  ◾억새 축제 한창

 

    ◀짝사랑

       ◼고복수

    ◀억새꽃

       ◼장보윤

    ◀억새꽃의 노래

       ◼김영선(소프라노)

    ◀억새꽃 사랑

       ◼최훈녀(소프라노)

 

 


 

 

◉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1930년대 오래된 대중가요 ‘짝사랑’의

첫 소절입니다.

여기 나오는 ‘으악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아닙니다.

이 ‘새’는 풀 나무를 상징하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그래서 가을을 상징하는 이 ‘으악새’는

바로 억새를 가리키는 경기도 방언입니다.

 

 

◉ 은색 꽃과 이삭을 매단 억새는

노래에서 얘기하듯 가을의 또 다른 상징입니다.

가을바람에 날렵한 몸을 흔들며

사람들에게 가을 정취를 안겨주는

가을 선물입니다.

명주실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를 단 억새를 보면

단정하게 머리를 다듬은

은발의 신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은퇴한 뒤 새 삶을 살아가는

나이 든 신사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여기에서 억새를 영어로 ‘Silver Grass’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10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전국 곳곳의 억새 군락지에서는

억새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 축제는

지난 주말에 시작됐습니다.

산정호수 명성산과 정선 민둥산,

광주 서창, 합천 황매산 등의 억새 군락지도

모두 비슷한 시기에 억새 축제를 열었습니다.

지난 주말 하늘공원 억새 축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을 비롯한 여러 억새 축제장은 지금

갈바람에 춤추는 억새와 그 사이를 넘쳐나는

사람들로 가을 물결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 우선 1936년에 나온 88년 전의 노래

고복수의 ‘짝사랑’부터 들어보고

억새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가을 억새를 떠올리며 떠난 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짝사랑에 한숨짓는 남자를

그려낸 노래입니다.

하지만 당시 노총각 고복수는

짝사랑했던 ‘알뜰한 당신’의 소녀 가수 황금심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최초의 가수 커플이었습니다.

나훈아 주현미 등 숱한 가수의 커버곡이 있지만

옛 가을 냄새가 물씬 나는 원조 고복수의 노래로

듣습니다.

 

https://youtu.be/yGbfc7ksV4c?si=Zy5D0ZJv8qPyk_7s

 

◉ 억새의 ‘억’은 ‘억세다’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새’는 얘기한 대로 ‘풀’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억새는 ‘억센 풀’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입니다.

그냥 보면 부드러워 보이지만

억새는 의외로 강인하고 억셉니다.

새나 개솔새, 비슷하게 생긴 갈대와 달리

억새는 잎의 중앙에 하얀 잎맥이

선명하게 지나갑니다.

그런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의 날이

서 있습니다.

자칫 손이 베일 수 있습니다.

억새란 이름은 그래서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 지금 한창 거두어들이는 벼와 마찬가지로

억새는 볏과식물입니다.

모든 볏과식물이 그렇듯이 억새도 잎자루가 없습니다.

대신 잎집이 있습니다.

살펴보면 잎이 완전히 줄기를 감싸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잎집과 줄기 사이에는 잎혀라는 흰색 막질이 있어

비 가림 역할을 하면서 습도까지 조절해 줘

억새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억새의 줄기 속은 꽉 차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릴 때는 연약해 보이지만

야무진 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갈대와 다른 점입니다.

 

◉ 줄기 끝에 부채꼴 모양으로 꽃이 달립니다.

그 아래는 이삭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마치 먼지떨이 총채 같습니다.

그 끝에는 까끄라기가 달려 있습니다.

까끄라기가 달려 있다는 것은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씨앗을 날려 완성한 번식력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억새 군락지가 생겨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 대중가요 속에 그려진 억새와 억새꽃은

역시 떠나간 사랑으로 그려질 떼가 많습니다.

눈처럼 하얗게 휘날리는 억새꽃을 지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그려낸 노래를 듣습니다.

통기타 가수 장하영의 딸 장보윤이 부르는

‘억새꽃’입니다.

데뷔 10년 차인 장보윤은 가수 윤수일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배출한 1호 가수입니다.

윤수일이 작사 작곡한 ‘억새꽃’을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풀어냅니다.

 

https://youtu.be/ADm61da2s78?si=TpznblEusZzFu8C5

 

◉ 억새밭에 가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많은 생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치와 메뚜기, 잠자리, 맹꽁이 같은 여러 생명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억새의 잎과 줄기에는 섬유질이 많습니다.

이 섬유질은 모든 동물에게 에너지 자원 역할을 합니다.

많은 곤충과 동물들이 억새밭을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을 정취를 즐기려고 억새밭을 찾지만

이들 동물은 삶의 터전으로 억새밭을 선택합니다.

품어주고 안아주는 억새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노유섭의 시로 만든 가곡 ‘억새꽃의 노래’를

소프라노 김영선의 노래로 듣습니다.

 

https://youtu.be/fNnf9_ecBCU?si=x4DVD9cFTAALYsXE

 

◉ 억새밭에 가서 억새의 뿌리를 살펴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억새 군락지에 가는 경우가 생긴다면

뿌리 쪽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억새가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루는 것을 보면

땅속에서 뿌리들끼리 손잡고 어깨동무하면서

뻗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목질화된 뿌리줄기가 손잡고 층층이

뻗어갑니다.

 

◉ 이 뿌리줄기는 우선 메마르고 거친 땅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땅속에 비오톱이란 공간을 만들어

많은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야고와 같은 식물은 뿌리에 붙어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억새는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가득한 식물입니다.

그래서 억새를 좀 더 알게 되면 좋은 가을 풍경을

만들어내는 의미 이상으로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가곡 ‘억새꽃 사랑’을 마무리 곡으로 듣습니다.

억새가 베푸는 사랑의 노래는 아닙니다.

인간의 그리움과 사랑을

억새에 빗대어 노래했습니다.

박수경의 시에 김애경이 곡을 붙였습니다.

소프라노 최훈녀입니다.

 

https://youtu.be/Zgv-ehIytEU?si=584EHkmoqe5aORCy

 

◉ 억새는 찾아오는 생명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가진 것을 나눠주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을 정취를 선물해

행복감을 안겨주고 주변 생명에게는

살길을 마련해 주니 온몸으로 은혜를 베푸는

볏과 식물답습니다.

그래서 억새 머리의 은발은

‘가을 산타클로스’가 쓴 모자의 고깔 같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