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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음악 11월 1일(금)✱

▲낙엽이 가는 길①

◾나무와 낙엽의 의젓한 작별

 

        ◀낙엽①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정의송

            ✱구르몽의 시

        ◀낙엽이 가는 길

           ◼나훈아

        ◀낙엽②

          (시:김해윤, 곡:윤학준)

           ◼라포엠

        ◀낙엽③

          (시:정삼주, 곡:박찬석)

           ◼정영자(메조소프라노)

 


 

◉ 11월이 왔습니다.

아침은 다소 쌀쌀합니다.

하지만 낮 최고 기온이 20도를 넘어서는

11월 같지 않은 날씨입니다.

9월 늦더위에서 밀려온 날씨 탓인 듯합니다.

유난히 따뜻한 11월이 떠나야 할 꽃들을

붙잡아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아흐레나 지났는데도 늠름한 꽃들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 국화과의 가을꽃들은 제외하고서라도

한련화와 메리골드, 녹차꽃, 바늘꽃,

풍접초, 용담꽃 등이 여전히 분위기 있는

가을을 만들어 줍니다.

‘그 여름의 마지막 꽃’으로 떠나보냈던

장미 한 송이까지 다시 탐스럽게 피어나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꽃들이 완전히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 5일부터는 아침 기온이 10도 이상 떨어져

영하에 근접하는 추위가 찾아옵니다.

그 이틀 뒤 7일이 입동(立冬)이니

떠날 때도 되기는 했습니다.

 

 

◉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단풍의 잔치가 화려합니다.

그 잔치의 한편에서는 나무와 나뭇잎이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는 쿨한 작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나뭇잎 덕분에 한해를 온전하게 살아낸

나무들은 헤어지는 나뭇잎이 단풍으로 화려하게

물들어 찬란하게 빛을 내며 떠나가도록 배려합니다.

떠나는 나뭇잎들도 홀가분하게

훌훌 털고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떨어진 나뭇잎, 낙엽은 그렇게 찬란한 임종을 하고

나무뿌리 옆 땅에 자리 잡습니다.

지금은 올려다보면 단풍이,

내려다보면 쌓여있는 낙엽이 눈에 잡히는 그런 때입니다.

 

◉ 땅으로 돌아가할 일이 여전히 남은

낙엽은 의젓합니다.

그런데 단풍을 즐겼던 사람들은 땅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 대부분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낙엽을 보면서 인생과 사랑이

덧없다고 시 쓰고 노래 부르곤 합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을마다 소환되는 프랑스 시인

구르몽의 시도 우리도 언젠가 낙엽이라며

인생의 황혼을 낙엽에 그려 넣고 있습니다.

구르몽이 19세기 후반에 쓴 이 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시가 아닌데 유독

한국에만 잘 알려져 있습니다.

 

 

 

◉‘Le Feuilles Mortes’로 잘 알려진

프랑스 샹송의 제목은

‘고엽’(枯葉)이라고 달면서

같은 제목의 구르몽의 시에는 통상

‘낙엽’(落葉)이라고 답니다.

늦가을에 자주 낭송되는 시지만 여기서는

노래로 들어봅니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정의송이 이 시에

곡을 붙여 불렀습니다.

11년 전에 그의 4집 앨범 속에 담았던 노래입니다.

낭송 시와 다른 분위기로

만추(晩秋)의 정서를 살린 노래입니다.

 

https://youtu.be/Aa-Z096otkI?si=B4xWmAnGW9rVoIu3

 

◉ 낙엽귀근(落葉歸根)!

찬란한 임종을 한 나뭇잎은 뿌리로 돌아가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제 나중에 오는 생명을 위해

아낌없는 밑거름이 돼줘야 합니다.

우선 뿌리 위를 덮어서 겨울 동안 뿌리가

얼지 않도록 이불이 돼줘야 합니다.

또 햇볕을 받아 땅의 온도가 올라가면

미생물의 왕성한 활동을 도와

좋은 거름이 됩니다.

낙엽의 입장에서는 아마 자신을

버림받은 쓸쓸한 종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낙엽을 보면 구르몽의 시보다는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도원(道原)이

전등록(傳燈錄)에서 한 말이 더

와닿을 것 같습니다.

‘엽락귀근 래시무구

(葉落歸根 來時無邱)' -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서

돌아올 때는 아무 말이 없다.’

1,200년 전 낙엽을 보고 자연의 이치를

읽어낸 도원의 혜안입니다.

 

◉ 많은 대중가요가 낙엽을 보고

인생무상, 쓸쓸함, 외로움 등을 그려냅니다.

1969년에 나온 나훈아의 ‘낙엽이 가는 길’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도원의 혜안이 스며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지와 맺은 정이 식어가지만 다시 오겠다며

웃고 간다고 노래합니다.

봄이 오면 다시 오겠다는 약속에서 거름이 돼

새로운 잎을 피워내겠다는 희생(犧牲)과

윤회(輪迴)의 낙엽 자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나훈아를 세상에 널리 알린 노래 중의 하나인

‘낙엽이 가는 길’입니다.

심형섭이 작사 작곡했습니다.

 

https://youtu.be/99UXGnW6HOE?si=nbgArxSp3eWTZOQz

 

 

◉어차피 거름이 될 낙엽이라 사람들이

밟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밟고 가는 사람에게 가을의 상큼한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낙엽길을 걸으며 오히려 사람이 더 조심해야 합니다.

낙엽 쌓인 곳 아래에는 종종

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속의 뱀은 대부분 독성이 강합니다.

낙엽 색깔과 비슷해서 구분도 어렵습니다.

어차피 노뱀벌(November),

11월에 뱀과 벌이 겨울잠을 자러 떠나며

사라지니 열흘 정도만 조심하면 됩니다.

 

◉ ‘누구든지 밟고 가라고 누구든지 가져다

태우라고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미워하거나

용서하거나 낙엽처럼만 낙엽처럼만

살아있으니 사랑하고 가게’

지난해 가을에 나온 팬텀싱어 3 우승팀

라포엠의 ‘낙엽’(Fallen Leaves)

노랫말의 일부분입니다.

김해윤의 시에 윤학준이 곡을 붙여 만든

라포엠의 첫 창작 가곡 앨범

‘시, 詩. Poem’의 타이틀 노래입니다.

 

◉ 우리 삶을 낙엽에 빗대어 긍정적으로

접근한 시어로 된 노랫말이

오래 여운이 남습니다.

라포엠의 멋진 4 중창과 오케스트라 연주의

하모니가 어우러져 낙엽을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뒹구는 낙엽에서 사랑을 읽어낸 시인의

시선도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마중’의 작곡가 윤학준이 특히 4 중창에 맞게

공들여 만들었다는 라포엠의 ‘낙엽’입니다.

'다 버리고 갈거나 다 묻고 갈거나'

 

https://youtu.be/TEO0TnyaWYY?si=m_Jfd5WQKEJwJwvB

 

 

◉ 6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가곡

‘낙엽’으로 마무리합니다.

작곡가 박찬석이 지금 서울교대의 전신인

서울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할 때 만든 곡입니다.

당시 무용음악으로 만든 곡입니다.

곡이 너무 좋으니 가곡으로 만들어 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재탄생한 ‘낙엽’입니다.

노랫말은 당시 이 학교 학생 시인

정삼주의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낙엽에서 사랑과 그리움을 읽은

가곡 ‘낙엽’을 중앙대 음대학장을 지낸

메조소프라노 정영자의 노래로 만나봅니다.

 

https://youtu.be/0_uZSPNj2VI?si=NBtW0xVVP-BPZrki

 

 

◉ 11월의 시작과 함께 곧바로 주말이 옵니다.

근처 숲으로 나가 나무와 의젓하게, 찬란하게

헤어지는 낙엽 비를 맞아보면 어떨까요?

낙엽 위를 걸으며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한 주말입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