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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은빛 연가
◾억새가 일러주는 삶
◀짝사랑
◼고복수
◀억새꽃의 노래
◼김영선(소프라노)
◀억새
◼주세페김
◀하늘 공원
◼유지나
◀억새꽃
◼장보윤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90년 전의 대중가요,
고복수의 ‘짝사랑’입니다.
가을이면 한 번씩 떠올리게 되는
노래입니다.
특히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는 10월에는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올가을에는 이 노래가 더욱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섭니다.
고복수의 ‘짝사랑’에 대한 인터넷
나무위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1936년 발표된 곡으로, 박정희 前 대통령이
본인의 영부인 육영수를 모종의 사건으로
떠나보낸 이후 애창곡이 되었다.’
1974년의 그 ‘모종의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암살자들’의 논란이
지금 뜨겁습니다.



◉‘Fact’와 ‘창작’의 경계 논란이
그 핵심입니다.
어느 쪽이 어느 편을 드는지를 살펴보면
흐름의 핵심이 보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시간이 가면 누가 옳은지 그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좌우대칭의 세상 속에서 어차피
결론은 쉽지 않습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논란은
시간에 맡겨 둡니다.
대신 여기서는 하려 했던 ‘짝사랑’과 ‘억새’
이야기를 펼칩니다.
박정희 前 대통령의 반주가(飯酒歌) 속에
등장하는 짝사랑의 대상은 육영수 여사입니다.
하지만 실연의 비가처럼 들리는 노래 속의
짝사랑 대상은 바로 잃어버린 나라입니다.
억새의 흔들림 속에 그것을 담았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가 박영호는 빼앗긴
나라에 대한 울분과 겨레의 고단한 삶을
토속성 짙은 은유적 시어로 그려 넣었습니다.
작곡가 손목인 그 정서에 부응하는
애틋한 선율을 단조로 실었습니다.
거기에 보태진 고복수의 애수 섞인 목소리가
이 노래가 오랜 세월 한국인의 가슴속에
살아남도록 만들었습니다.
◉‘으악새’는 억새를 부르는 경기도 방언입니다.
새는 풀(草)의 옛말입니다.
솔새 개솔새 모두가 풀입니다.
‘이즈러진 조각달’ ‘임자 없는 들국화’로
표현되는 망국의 탄식 속에 좌절과 슬픔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바람 속에도 쓰러지지 않고
‘살랑살랑’ 흔들리며 유연하게 버텨내는
억새의 모습이 대비됩니다.
거기에는 끈질기고 억센 저항 의식이 엿보입니다.
고복수 선생의 육성으로 들어 보는
‘짝사랑’입니다.
https://youtu.be/yGbfc7ksV4c?si=U1BwClSTUcpnKmX4
◉10월은 억새의 달입니다.
10월 중순이면 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억새의 일렁임이 장관을 이룰 때입니다.
다음 주부터 억새 축제가 전국 억새군락지에서
시작됩니다.
일찌감치 축제가 시작된 곳도 있습니다.
정선의 민둥산이 그렇습니다.



◉포천의 명성산을 비롯한 대부분 산의
억새군락지는 다음 주 축제를 시작합니다.
서울 하늘공원의 억새 축제도 다음 주
주말부터 일주일간 이어집니다.
일렁이는 억새꽃과 이삭,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 물결, 산등성이로, 하늘로 흐르는
억새의 은빛 물결이 파란 하늘에
수놓아지는 가을입니다.



◉억새꽃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억새꽃은 출수할 때 잠시 피었다가,
수정하고 나면 이내 집니다.
그래서 억새군락지에서 보는
하얀 혹은 은빛 물결은 억새꽃이 아니라,
억새 이삭의 물결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삭을 꽃으로 알고
억새꽃이라 부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지장이 없다면
그렇게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꽃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면 은발의 신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가을바람은 억새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바람이 꽃가루를 실어 나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꽃이 지고 나서 씨앗이 달리면
이 씨앗도 바람이 데려갑니다.
억새도 나는 새처럼 날개가 있습니다.
까끄라기라는 이 깃털로 주변을 쉽게
억새 영토로 만들어 버립니다.
대규모 억새군락지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가곡 ‘억새꽃의 노래’를 들어 봅니다.
소프라노 김영선입니다.
https://youtu.be/fNnf9_ecBCU?si=JBDHvJcjxheTMT6V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물결,
석양이 내리는 산자락의 금빛 물결,
빈 가을 하늘을 지고선 넓디넓은 군락,
그리고 바람에도 일어서는 강인하고 억센 모습,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억새는 대부분 그렇게
그려집니다.
노래 또한 비슷합니다.
2년 전 아흔네 살에 작고한 사조산업 명예회장
이일향 시조 시인이 그려낸 ‘억새’에 곡을 붙어
노래가 됐습니다.
작곡을 맡았던 랑코리아 예술감독
주세페 김이 연주하면서 부릅니다.
https://youtu.be/kKeZd-H35rw?si=ZczMD3BFugh4qjpl
◉이제 가까이 다가가서 억새를 들여다봅니다.
억새는 볏과식물입니다.
볏과식물은 주로 이삭(수:穗)으로 주변에
은혜를 베푸는 식물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푸는 벼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억새는 사람뿐 아니라 주변의
거의 모든 생명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어찌 보면 더 상위 등급의 볏과식물인지
모릅니다.



◉억새는 주변의 생명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는 재능이 있습니다.
억새 주변에서는 메뚜기와 여치, 잠자리, 맹꽁이
같은 여러 생명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억새는 잎과 줄기에 섬유질이 유난히 많습니다.
이 섬유질은 주변 생명에 최고의 에너지원이
됩니다.
많은 곤충과 새, 동물이 억새밭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음 주말부터 서울 하늘공원에
억새 축제가 열리면 숨은 보물 야고와
만나는 행운도 있습니다.
야고는 억새의 뿌리에 기생해서 물과 양분을
얻어먹으며 자라는 기생식물입니다.
엽록체가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늘공원을 조성할 때 제주 억새를 따라와
이제는 하늘공원 억새밭에 당당히 자리잡은
주역 식물이 됐습니다.



◉뿌리에 붙어서 살아가라는 억새의
허락 덕분에 보라색 예쁜 꽃을 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생긴 모양 때문에 ‘담뱃대 더부살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넓게 펼쳐진 억새밭은 새들에게는 은신처를
제공해 줍니다.
동시에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검은머리쑥새와 멧종다리 같은 철새는
하늘공원의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됐습니다.
유지나의 트롯 ‘하늘공원’을 만나봅니다.
https://youtu.be/JHY5g0LiGZQ?si=gL3-k94i4S3xHGsn
◉야고를 살게 해 준 억새의 뿌리는
다른 땅속 생명들에게도 살 터전을
만들어줍니다.
억새의 땅속뿌리는 서로 손잡고
어깨동무하며 뻗어 있습니다.
목질화된 뿌리줄기는 메마르고 거친 땅에도
왕성하게 뻗어가면서 땅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같은 볏과식물인 대나무 뿌리 같습니다,
동시에 비오톱이라는 땅속 공간을 만들어
다른 생명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줍니다.





◉가을이 지나면 억새는 시들어갑니다.
하지만 규산질을 다량으로 함유한 억새 줄기는
꼿꼿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억새의 화려한 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중가요 속에서 억새 이삭이 시드는 것을
사랑이 떠나가는 것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겨울에도 꺾이지 않는 기세는
지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새기기도 합니다.
그런 분위기의 대중가요 장보윤의 ‘억새꽃’을
마지막 노래로 듣습니다.
https://youtu.be/ADm61da2s78?si=W_S-xHZ1JxeFjNF1
◉억새는 사람에게 가을 정취를 안겨주며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도록 해 줍니다.
찾아오는 다른 생명에게는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줍니다.
누구를 가리지 않고 가진 것을 나눠주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울 것이 많은 은혜로운 식물이
분명합니다.
◉겨울 동안 시들어 있는 억새를 예사로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겨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얼어 있는 뿌리 쪽을 보면 봄을 준비하는
새싹과 만나는 놀라움이 있습니다.
초록색에 붉은 기운이 도는 새싹에서
억새가 살아가는 예사롭지 않은 정열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배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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