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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이야기 
◾하지감자를 기다리며 

       ◀최고의 여자 
         (All a Woman Can Be)
         ✱2024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김소향 

       ◀호엔프리드베르크 행진곡 
         (Hohenfriedberger March)
         ◼프리드리히 대왕 작곡 추정 
          (Frederick The Great)
  
       ◀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
         ✱안데스 인디오 음악

       ◀French Fry Song
         ◼Ms. Alli & Mr. Todd

 

 


◉열흘 전쯤부터 
감자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하얀색 꽃, 연한 보라색 꽃 
두 종류입니다.
초봄에 심은 감자가 
제대로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꽃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감자를 데려갈 하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동시에 알려줍니다.
포슬포슬 껍질이 일어나는 
찐 하지감자가 벌써 
군침을 돌게 만듭니다. 

 


◉감자꽃은 
본 꽃대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꽃가지가 
마주나기를 이룹니다.
그러면서 통산 3개의 꽃이 
한 단위로 묶여 있습니다.
취산(聚散) 꽃차례라고 
부르는 모습입니다. 
보통의 곡물은 꽃이 피고 
거기에 열매가 달리면 
식용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감자는 땅속의 
덩이줄기를 먹습니다.
땅속의 줄기가 부피가 
커진 형태가 바로 
바로 덩이줄기입니다,
고구마는 뿌리지만
감자는 줄기입니다. 

 


◉그래서 감자꽃이 펴도 
사람들이 크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땅속으로 갈 영양분을 
꽃이 가져간다고 생각해 
꽃을 따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별 영향이 없어 
그냥 둬도 된다는 게
요즘 추세입니다.
덕분에 비교적 오래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자꽃에도 
나중에 열매가 달립니다. 
방울토마토 같은 열매는
씨감자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수확한 감자를 씨감자로
심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은퇴한 뒤 시골로 내려와 
감자 농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다 돼 갑니다. 
처음에는 좁은 땅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2백 평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초보 농사꾼이 비교적 
쉽게 농사지을 수 있는 
작물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특히 즐겨 먹는 데다 
주변 사람과 나눠 먹기
좋은 점도 작용했습니다. 

 


◉농사짓는 요령도 
꽤 생겼습니다.
올해는 고랑에 풀도 
적게 나서 명아주 등이 
감자와 엉키지 않도록 
잘 조치했습니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이제는 친환경 농산물로 
인정까지 받았습니다.
더 기분 좋게 감자를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 근처에 알찬 
수확을 기대하며 
감자꽃에서부터 시작해 
감자 이야기까지 
함께 이어갑니다.

 


◉감자꽃 하면 떠오르는 
역사 속의 인물이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입니다.
18세기 후반에 살았던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의 
왕비입니다.
이른바 ‘가짜뉴스’로  
뒤집어쓴 죄 때문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의 여인입니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주목을 받았던 그녀는 
연회장 등 공식 석상에 
항상 감자꽃을 머리에 달고 
등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별히 감자꽃을 좋아해서 
그녀가 달고 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민에게 감자 농사를 
많이 짓고 많이 먹을 것을
권유하기 위한 홍보전략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감자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악마의 식물’로
인식돼 있었습니다. 
감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심었다면 굶어 죽는 사태도, 
프랑스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유럽은 
감자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1793년 1월 마리의 남편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됩니다.
세계에 큰 충격을 던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어 마리 역시 그해 10월 
공개 처형됩니다. 
죄목은 국고 낭비,
외국 세력과 공모 등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뒤집어씌워서 
민심을 흔든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라는 말은 
급진세력이 만든 ‘가짜뉴스’로 
민중을 부추기는데
적절히 사용했습니다.
그녀를 처형해야 하는 
그들에게 그녀가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루소의 참회록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오스트리아 여왕의 딸이었던
마리가 프랑스에 오기 전인 
12살 때 나온 말입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 역시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녀는 단두대에 오르는 
계단에서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습니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예요’
서른일곱 살에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지면서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가짜뉴스’에 희생된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지난해 뮤지컬 제작 
10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김소향의 노래 ‘최고의 여자’
(All a Woman Can Be)를 
듣습니다.
혁명의 가운 속에서 
자신을 사랑했던 
페르젠 백작의 조언을 듣고
그 곁에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나타낸 넘버입니다.
https://youtu.be/c-02_YXmgmg?si=nqKAtxjlJX1i28nU

◉왕과 왕비의 처형을 주도하고 
공포정치를 펼쳤던 
자코방당의 로베스 피에르도 
너무 과격한 선택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이듬해 단두대에서 
처형됩니다. 
이후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등장과 함께 
새 국면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자꽃을 단 것은 전적으로 
농정학자이자 신하인 
파르망티에(Parmentier)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감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감자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파리 지하철 노선에는
‘파르망티에’라는 이름의
지하철역이 있습니다.
굳이 우리로 친다면 
‘문익점역’인 셈입니다.
그만큼 감자에 대한 그의 
헌신을 프랑스인들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리와 루이 16세에게 
감자꽃을 달도록하는 
소극적인 홍보전략과 함께 
적극적인 전략도 구사했습니다.
우선 왕실 농장과 국영농장에 
감자를 심고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왕족과 귀족이 먹을 귀한 
감자이니 손 대면 안 된다.’는 
경고판이었습니다.
낮에는 경비병을 세워서 
지키는 척하다가 
밤에는 아예 철수시켰습니다.
감자 서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감자를 먹는 
왕족과 귀족 이야기를 
널리 확산시켰습니다.
감자가 순식간에 널리 
퍼져나간 것은 물론입니다. 
이 전략은 바로 그가 
프로이센 포로 시절 
그곳에서 본 프리드리히대왕의 
방법 그대로였습니다.

 


◉프러시아와의 7년 전쟁에서 
그는 포로로 잡혀 
여러 해를 프로이센에서 
보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배급으로 
맛본 감자가 훌륭한 음식이 
돨 수 있다는 것을 이내 
알아챘습니다. 
재배가 급속히 늘고 있는 
그곳의 감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프리드리히 2세가 사용한 ‘
’감자 서리‘ 전략을 
프랑스로 그대로 가져가 
감자의 재배확산을 
이뤄냈습니다.

 


◉독일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 대왕’((Der Kartoffelkönig)
이라는 애칭이 있습니다.
독일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입니다. 
군인으로서 뛰어난 인물로 
여러 정복 전쟁의 승리로 
유럽 최강의 군사 대국을 
이룬 인물입니다.
계몽 군주이기도 한 그는
인간적 자비로움을 정치에 
접목한 개화된 군주입니다. 
‘반(反) 마키아벨리론’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플루트 연주와 작곡 등 
예술적 역량을 지닌 
예술가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의 각 방면의 치적을 
간단히 언급한 영어 캡션과 
영상을 만나봅니다. 
음악은 그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호엔프리드베르그 
행진곡’입니다.
일명 ‘프리드리히 대왕의 
행진곡’으로 불리는 
독일에서 널리 알려진 이 음악은 
1945년 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가사가 붙은 노래도 있습니다.
https://youtu.be/a-STlFtmLJA?si=G4WcF8PXITIFCaAr

 

◉다시 감자 얘기로 돌아갑니다. 
남미 안데스산맥이 
원산지인 감자는 16세기 초에 
페루 등지에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안데스산맥 일대에서 
인디오들이 7천 년 이상 
재배해 온 먹거리를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으로 가져옵니다. 
인디오들은 그곳 기후에 맞게 
개발된 다양한 품종으로 
거의 주식으로 삼았던 
식물이었습니다.
안데스산맥을 떠올리는
그들의 익숙한 음악 
엘 콘도라 파사
(El Condor Pasa)을 
들어보고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https://youtu.be/EKWefrgcBV8?si=fIukqM8mOWy0VCbs

 

◉유럽에 온 감자는 
처음부터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유럽 사회를 지배하는
기독교가 이를 배척했습니다.
우선 감자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식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씨앗으로 번성하는
식물을 창조했다는 성경과 
맞지 않았습니다. 
씨앗이 아닌 줄기로 자라는
감자가 종교재판에 넘겨지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화형(火刑)판결을 
받은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감자를 쪼개서 땅속에 
마치 시체 묻듯이 심는 
방법도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악마의 식물’이었습니다.
자연히 감자는 사람이 
먹는 먹거리에서 제외됐습니다.
가축이 먹는 사료로는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프레드리히대왕은 
감자가 식량 해결의 
좋은 답이 돨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1753년 1차 
감자칙령이 나옵니다.
4년 뒤 감자 재배 관련
지침을 담은 2차 칙령을
내립니다.
사방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프랑스가 본받았던 
앞서 소개한 ‘감자 서리’
전략이었습니다.

◉우선 매일 수라상에 
한 가지 이상의 감자요리를 
올리도록 했습니다.
감자를 개도 안 먹는다고 하면
매일 먹는 군주는 개보다 
못한 셈이 됩니다.
불평은 자연히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칙령을 내립니다.
‘지금부터 감자는 
왕실과 귀족 요리에만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직할지와 
마을 공터에 대규모 감자밭은
조성해 근위대가 지키도록 
조처했습니다. 
물론 밤에는 슬그머니 철수해
감자 서리를 부추겼습니다.
감자 재배가 프로이센 
전역에 퍼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프렌치프라이, 
감자튀김은 현대인에게 
가장 익숙한 페스트푸드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름을 놓고 
프랑스와 벨기에의 
원조 논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록으로 보면 벨기에 측의 
주장에 일리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했던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백악관에서 감자튀김을 
‘Fried in a French Manner’라고 
소개하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미국에서 이 말이 1918년 이후에 
쓰였다는 점에서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벨기에에서 시작해 
프랑스에서 유행했고 
미국에서 대중화됐다고 
정리하면 적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영연방 자역에서는 
포테이토 칩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세계가 맥도날드와 
버거킹, 프렌치 프라이로 
이어지는 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감자튀김’, French Fly Song‘을 
마무리로 듣습니다.

https://youtu.be/8gD_Dbzv8k8?feature=shared

 

◉감자잎과 줄기에는 
솔라린(Solanine)이란 
독성물질이 있습니다.
푸르게 변한 감자에도 
이 성분이 나타납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감자는 유럽에서 비로소 
주요 곡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계사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은 식물이 
됐습니다.

◉감자 이야기에서 
아일랜드와 영국, 
미국 이야기를 빼놓기 
어렵습니다. 
세계 역사 물줄기에 
큰 영향을 끼친 
이 나라들의 감자 이야기는 
다음 차례로 넘겨 놓습니다.

 


◉빈세트 반 고흐의 
‘감자 먹은 사람들’
(The Potato Eater)은 
감자가 주식이 된 
유럽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지친 얼굴로 둘러앉아
커피에 찐 감자를 먹는 
서민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유럽인들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감자의 존재를 
읽게 만들어 줍니다. 

◉베르린의 이웃 도시 
포츠담은 우리에게
포츠담회담으로 이름이 
익숙한 곳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무덤은 
그곳 상수시(Sans Souci)
궁전에 있습니다.
’군주는 국가 제일의 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목민의 근원이자 정치의 
첫 번째 덕목은 굶주리는
백성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감자를 통해 실천한 
인물입니다.

 


◉그의 무덤 앞에는
꽃보다는 감자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감자꽃의 꽃말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입니다. 
독일인들은 여전히 
그를 주군으로 인정하겠다는 
마음을 감자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덤 앞의 
못생긴 감자는 그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기도 합니다. 
꽃보다 감자가 더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배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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