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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부르는 봉선화
◾손톱 물들이기 추억
◀봉선화
✱홍난파 작곡, 김형준 작사
◼김천애(소프라노)
✱1940년 녹음
◼조용필
✱1987년 일본 공연
◼고성현(바리톤)
◀봉숭아
◼정태춘 채은옥
◼송소희
◀봉선화 연정
◼이수연



◉가을이 들어선다는
입추(立秋)가 어제
지나갔습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말복(末伏)이 내일입니다.
무더위가 여전히
대단합니다.
입추가 되면
더위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입추 매직(立秋 Magic)은
올해도 없습니다.
그래도 가을이 저만큼
다가와 있다는 기대로
막바지 더위를 견뎌냅니다.

◉따가운 햇살 사이로
고추잠자리가
나다니기 시작합니다.
고추잠자리는 입추와
말복 무렵에 가을을
미리 알리는 전령입니다.
한여름 꽃을 피웠던
여름꽃들도 가을 기운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맨드라미 오뚝하고
봉선화 기우뚱한 데,
푸른 호박 넝쿨엔
붉은 가지가 얽혀 있네.
높은 하늘 마른 햇살에
가을이 생겨나네.’
18세기 ‘농가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여름 생명들은
이처럼 가을을 알리는
표지판이기도 합니다.
때맞춰 입추의 하늘도
한층 높아진 듯합니다.
가을이 그렇게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만날 친구는
여름에 피어
가을을 꾸미는
봉선화(鳳仙花)입니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Touch me not!)
동서양의 봉선화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꽃말입니다.
씨주머니를 건드리면
씨가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건드리지 않아도
씨가 익으면 저절로 터져서
여기저기로 날아갑니다.
그래서 한해살이
식물이지만
봄에 씨를 뿌리지 않아도
어김없이 싹이 나고
꽃이 피어 매년
볼 수 있는 친구가 됐습니다.
집에 있는 여러 색깔의
봉선화는 모두 그렇게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60Cm 전후의 줄기에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을
매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개미들이 열심히 줄기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꽃 뒤쪽에 ‘며느리발톱’으로
불리는 꿀주머니, 거(距)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사이에
씨앗 주머니들이
달려 있습니다.

◉햇볕 잘 드는 곳을
좋아합니다.
아니라도 그늘진 곳,
습한 곳에서도
잘 자랍니다.
더 좋은 곳,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는
성격 좋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울 밑에 선 봉선화’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가을이 시작되면
개울가 습지에는 물봉선이
가득 자리 잡아 갈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억 속의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에
망국(亡國)의 한(恨)을
노래한 꽃이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가곡
‘봉선화’ 때문입니다.
1921년 작곡가 홍난파는
자신의 소설집 첫머리에
‘애수(哀愁)’란 이름의
바이올린곡 악보를 싣습니다.
이웃에 사는 선배 시인
김형준이 이 악보에
가사를 붙여 탄생한 가곡이
바로 ‘봉선화’입니다.

◉김형준은 평소
집안에 가득 핀 봉선화를
보며 ‘나라 잃은
우리 신세가 봉선화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1940년대 이 가곡을 불러
세상에 널리 알린
소프라노 김천애가
얘기하곤 했습니다.
홍난파는 1919년
동경 2.8 독립선언 사건에 연루돼
동경 음악학교 진학이
허가되지 않은 때
이 곡을 작곡했습니다.
두 작곡가와 시인의
공통 정서가 만들어 낸
가곡이 바로 ‘봉선화’입니다.

◉초기 이 노래는
소프라노 최정숙이 불렀지만
1940년 소프라노 김천애가
도쿄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렸던 신인 음악회에서
한복차림으로 불러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후 숙명여대
음대학장 등을 지낸
김천애는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1995년
일흔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생전에
3절 가사가 있어
이 가곡은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승화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일제가 조선의 독립을
암시한다며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봉선화’를
1940년에 녹음한 김천애의
귀한 노래로 만나봅니다.
https://youtu.be/d0ElJJ1xuOY?si=OMdMDQADk9eXKD4u


◉홍난파와 김천애는
1940년대 일본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친일 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애환을
봉선화에 빗대어 표현한
‘봉선화’는 만들 당시의
순수성을 지닌 채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1987년 조용필이
일본 투어 과정에서
한복을 입고 혼을 실어
부르는 ‘봉선화’를 들어봅니다.
https://youtu.be/Rw9afdksj5g?si=OZJwvxZG-LD5HUCN
◉고려와 조선시대
한시를 비롯해
현대 시에 이르기까지
‘봉선화’와 ‘봉숭아’를 그려낸
시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가곡은 홍난파의
‘봉선화’ 외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한국 가곡의 역사의
출발점으로 인식되는
‘봉선화’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봉선화’는 부르지 않은
남녀성악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대표적인
가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바리톤 고성현의 노래로 ‘
들어보는 ’봉선화‘입니다.
https://youtu.be/g8ZvDsE7mWs?si=xxL9g0ICpADJZHda
◉봉선화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염지갑화(染指甲花),
즉 손톱에 물을 들이는
꽃이라는 점입니다.
손톱에 물들이는 꽃이라는
풍습은 조선 초기 문신
소세양(蘇世讓)의
양곡집(陽谷集)에 등장합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등장하는 고려 충선왕의
이야기를 보면 이미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풍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선왕은 예사롭지 않았던
삶을 살았던 고려왕입니다.
충렬왕과 원나라 대칸
쿠빌라이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절반의 고려 피와
절반의 몽골 피를 가지고
태어난 인물입니다.
나중에 고려 공녀 출신
기왕후와 대칸 토곤테무르
사이에서 태어나
북원제국의 첫 번째
대칸이 되는 이유시리다라와
비교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충선왕은 고려왕에 올랐다가
쫓겨나 당시 원나라 수도
대도, 지금의 베이징에
불려 가 지내다가 다시
고려왕으로 복귀합니다.
대도에 불려 가 있을 당시
손톱에 봉선화로 물들인
고려 출신 궁녀를 만납니다.
봉선화로 물들인 손으로
가야금을 켜며 충선왕의
고려 복귀를 기원했던
이 여인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고려왕으로 복귀한 뒤
궁궐에 봉선화를 많이
심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고려인 왕비를
사랑한 그를 몽골 출신
왕비가 시기한 데다
반원(反元) 개혁 정책으로
미움을 받아 다시 쫓겨나
다시 대도로 불려 가고
나중에 티베트 오지로
유배 가는 고초를 겪은
비운의 왕입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도
봉선화는 외세의 침탈에
고초를 겪은 비운의 꽃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손톱에 물들인
봉선화 물이 가을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신랑감이 나타나거나
그리워하는 님이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봉선화 물이 그래 오래
가지 않지만
옛 상류층의 처녀들은
기대를 안고 끊임없이
손톱을 물들였습니다.
그래서 규중 연인들의
벗이라는 의미로
규중화(閨中花)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손톱에 물들이는
추억 속의 ‘봉숭아’ 노래를
불러옵니다.
‘봉선화’와 ‘봉숭아’는
같은 꽃이고 둘 다 표준어입니다.
17세가 명나라 식물 사전 격인
군방보(群芳譜)에는
줄기와 가지 사이에
꽃이 피어 머리, 날개,
꼬리가 모두 일어난 것이
봉황새의 형상을 닮아
봉선화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말이 옯겨지는 과정에서
‘봉숭아’라는 우리말이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1985년 정태준 박은옥이
부른 ‘봉숭아’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포크송입니다.
이 노래 속에는
어릴 적 누이가 보이고
첫사랑이 보여서 특히
남자들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아들 부부의 다른
노래들과는 달리
순수하고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추억의 노래를
들어봅니다.
https://youtu.be/qGCF6p0o8YA?si=9MN9Yoh5xzJEBqXN
◉국악풍으로 부르는
이 노래의 분위기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소리꾼 송소희의
버전으로 만나봅니다.
https://youtu.be/ecRvIdiFxsM?si=Gh_XHpHQp9kwwtxv
◉작고한 트롯 가수
현철이 부른 ‘봉선화 연정’은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봉선화 노래입니다.
지난해 여든두 살의 나이로
타개한 그를 추모하는
불후의 명곡에서
어린이 트롯 가수
이수연이 부르는
‘봉선화 연정’을
마무리 곡으로 듣습니다.
https://youtu.be/UB3DZnwCPcY?si=HONSRYMQ5NfbLiRj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이는 풍습은 거의
여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인들의 소박한 미용법이
봉숭아 물들이기였습니다.
간혹 남성이 손톱을
물들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악귀와 뱀을
쫓으려는 의도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짓날 악귀 쫓으려고
팥죽을 먹는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봉선화를 심으면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봉선화에 붙여진
떠 하나의 이름이
금사화(禁蛇花)입니다.
◉지금은 갖가지 매니큐어로
손톱을 쉽고 예쁘게
장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봉선화 물들이기
풍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시도해 보면
좋은 추억이 될 법도 합니다.
이달에 경기도 광주
곤지암 신촌리
봉선화 마을을 방문하면
봉선화 물들이기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고 하니
한 번 가볼 만합니다.
(배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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